BOOK/소설
한강 「소년이 온다」 후기 및 12월 3일부터의 기록
2024. 12. 17. 19:32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후기,
그리고 2024년 12월 3일부터의 기록.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의 출간작 읽기 두 번째.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를 읽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도서관에 예약해둔 「소년이 온다」가 제목처럼 나에게 왔다. 내가 원래 예상했던 시점보다 예약 순번이 더 빠르게 돌아왔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을 다음달 독후감 도서로 선정하자고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그렇게 「소년이 온다」는 12월의 책이 되었다.
11월 말에 이 책을 한번 완독하고 나서, 또 한번 더 읽은 다음 독후감을 쓸까 싶어 고민하던 때였다. 뒷부분은 도서관 반납 기일 때문에 조금 급하게 읽은 감이 있었기 때문에. 12월 3일 화요일. 그 날은 여느 때와 별반 다를 바 없이 평범했다. 조금 고려할 게 있다면 코로나로 추정되는 질병에서 회복중이었던 터라 기침을 상당히 많이 했다는 것 정도. 기침이 하도 많이 나와서 한참 상영중이던 영화 위키드를 보러갈지 말지 고민하다 금요일로 예매를 하고, 친구와 TRPG 이야기를 하며 카톡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우리가 하던 게임, 파판14가 그날(하필이면) 대형 업데이트를 했기에 그 이야기도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12월 4일은 내가 좋아하는 소설의 외전이 올라오기로 한 날이라 어서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열시 반. 포토샵과 카톡창만 켜놓느라 뉴스를 접하지 못했던 내게 친구의 메세지가 도착했다. 아니 비상계엄 이거뭐임? 1초 전까지 시시덕거리며 게임 이야기나 하고있던 두 사람의 카톡방엔 싸늘함만이 감돌았다...
그림을 그리다 말고 급하게 거실로 뛰쳐나갔다. TV를 보고있던 부모님에게 빨리 뉴스를 틀어보라고 했지만 실시간 뉴스를 전달하는 채널 말고는 비상계엄 선포를 제대로 전하는 곳이 없었다. TV 액정 속에서 대통령이 뭐라 말하고 있긴 한데. 머리가 아득해졌다. 이게 무슨 일이냐며 나에게 사유를 묻는 부모님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다가 겨우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했대!" 라고 말했다. 순식간에 분위기는 심각해졌다. 그런 와중에도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는 재난문자 따위는 오지도 않았다. 아빠는 뉴스를 보다 말고 다른 주요 지상파 채널들도 돌려보았다.
이미 SNS 타임라인은 이 미친 상황에 뒤집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좀 흐르자 온세상은 계엄령에 관한 뉴스로 난리가 났다. 나는 어쩐지 알싸한 공포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사유는 명확했다. 내가 호남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는 광주 시민은 아니지만 광주와 상당히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 학생 때는 입시를 위해 매일같이 광주로 미술학원을 다녔다. 지금도 그곳으로 병원을 다니고 있기 때문에 한달에 한번 이상은 꼭 방문하곤 한다. 내 부모님은 광주로의 이사를 고민한 적이 있기도 했다. 어쩌면 나도 부모님을 따라 그곳에서 살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곳은 내 가족이, 친척이, 친구가 살고있는 도시였다.
난 원래도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근현대사에 큰 흥미를 느끼는 편이었다(사실 정확히는... 전체 역사 중 근현대사 70퍼센트 정도). 어릴 때부터 옆 도시에서 일어난 비극에 대해 열심히 공부해왔고,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자주 챙겨봤다. 그렇기에 대통령이 오로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비상 계엄을 선포했을 때, 국가가 국민에게 어디까지 잔혹한 일을 행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전두환은 그 일을 은폐하기 위해 간첩 세력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말도 안되는 누명을 씌워 광주를 지독하게 억압했다.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한국은 5.18 희생자들을 유공자로 부르며 그들이 이 나라에 큰 공헌을 해주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끔찍했던 사건을 기리고자, 지금도 광주는 매년 5월 18일이 되면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행사를 연다. 그럼에도 광주에 대한 모욕은, 전라도 혐오는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았다. 지역갈등이라는 애매모호한 단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혐오말이다.
그런데, 또다시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그것도 2024년에? 믿을 수가 없었고, 믿고 싶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호남은 군부독재에 의한 학살을 일으킨 민정당 세력('국민의힘'의 전신)에 큰 반감을 가진 지역이다. 지금도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날의 고통을 겪은 이들이, 유족들이, 그들의 친구가 두 눈을 뜨고 살아있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대통령이 호남을 가만히 놔두긴 할까? 바로 며칠 전에 읽은 「소년이 온다」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날은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시상식이 딱 일주일 남은 시점이었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 다시 한번 소름끼쳤던 부분은, 그곳에 나오는 지명들이 내게 너무도 익숙하다는 점이었다. 전대, 금남로, 충장로…. 오늘날 그토록 평화로운 곳에서 학살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게, 학생 때 친구와 약속을 잡고 놀던 바로 그 공간에서 누군가는 군인이 쏜 총탄에 맞아 죽어갔다는 사실이 너무나 끔찍했다. 하지만 또다시, 44년의 역사를 거슬러올라 소설 속 내용이 현실에서 펼쳐졌다. 실탄이 장전된 총기를 들고 국회의사당에 진입하는 군인들. 적이 아닌 국민을 향해서 겨눠지는 총구들. 내가 읽은 기록과 별반 다르지 않은 장면이 뉴스에 실시간으로 방송되었다. 국회의원의 출입을 저지하고, 기어이 창문을 깨고 들어가는 군인들의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누려왔던 평온한 일상은 얼마나 연약한 것이었나. 언제든 누구 한 사람의 악의에 의해 깨어질 수 있는 유약한 평화였구나. 그리고, 누구나 1인 방송을 할 수 있는 현 시대와 달리 그곳의 상황을 어디에도 알릴 수 없었던 1980년의 광주는 얼마나 외롭고 절박했을까.
하지만 그 밤. 어둠 속에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국회 앞으로 달려간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국회를 둘러싼 경찰에게 항의하고, 몸을 던져 계엄군의 앞을 가로막다가 바닥에 나뒹굴고, 국회로 나아가던 전술차량의 앞에 주저앉아 꿋꿋하게 앞길을 막는 사람들이 있었다. 거리 탓에 국회까지 가지 못한 채 유튜브 뉴스로만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나와는 달리, 저 멀리 울산에서 택시기사에게 50만원을 주고 서울로 간 사람도 있었다. 국회를 향해 다가오는 군용헬기의 섬뜩한 비행소리에, 죽음을 각오하며 마지막이 될지 모를 영상을 남긴 여성이 있었다.
자신이 이곳에서 죽게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국회를 지킨 이들. 그 사람들이라고 죽음의 공포를 몰랐을까. 아니, 누구보다도 두려운 건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었을 테다. 그 장면을 지켜보며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과 벅차오름을 느꼈다. 도청에 남아있으면 죽게될 거란 사실을 알면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킨 광주의 시민들이 떠올랐다. 소설에 나오는 동호처럼, 진수처럼…. 5.18민주화운동 최후의 항쟁지 옛 전남도청. 그곳에 남은 200여명의 시민들이.
나라면 저럴 수 있었을까. 「소년이 온다」를 보며 느낀 감상이었다. 나라면 동호처럼, 친구가 죽었음에도 그 사실에 두려움을 안고 도망가긴 커녕 오히려 그 누구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도청에 남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2024년 12월 3일 밤의 국회를 보며 느낀다. 내가 서울에, 혹은 수도권에 살고 있었다면 곧바로 국회에 달려나갈 수 있었을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1980년 광주에 빚을 진 것처럼, 2024년 12월 3일 국회 앞에 달려간 사람들에게 빚을 진 기분이 들었다. 그리하여 12월 7일. 첫 번째 탄핵소추안 표결이 이뤄지던 날, 나는 광주로 갔다. 광주에게, 국회 앞의 그들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하여.
비록 국민의힘 의원의 집단 불참으로 인해 그날의 탄핵 촉구 시위는 분노와 함께 마무리가 되었지만(하필 당일 생리가 터져 그냥 쓰러지고 싶은 극한의 생리통을 견디며 518민주광장으로 향하고, 호흡기 질병의 후유증으로 기침이 쉴 새 없이 나는 와중에도 국힘 107인의 이름을 소리높여 부르던 기억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돌아와라콜록컥커헉) 나도, 내 주변도 좌절하지 않았다. 불참한 의원들 명단 띄워놓고 잡도리를 하면 했지. 정말이지 격렬한 분노였다.
그네들은 어차피 탄핵이 안 될 거라며 절망하길 바랐을지 모르지만, 난 오히려 다음주엔 서울로 가서 국회 앞 한자리를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통령이 만들어준 연말 정모에 참석하는 기분으로. 결국 직접 피켓까지 그려가며 친구들과 함께 12월 14일의 국회의사당을 찾았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는 것을 확인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까진 꽤 시간이 남았지만, 탄핵으로 향하는 한걸음을 내딛은 장면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했다. 누군가는 어차피 곧 사그라들 관심이라며 시위에 나간 젊은 여성들을 욕하고 깎아내리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우리는 다르다. 가라앉는 세월호에서 구해내지 못한 내 또래 아이들을 보았고, 국가의 의도적인 외면으로 길거리 한복판에서 또다시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죽어간 이태원 참사를 보았다. 그럼에도 관련자들이 제대로 된 처벌 하나 받지 않고 당당하게 거리를 거니는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정치에 관심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는 세대이지 않나. 아무리 깎아내리려 안간힘을 써도 이렇게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지지 않을 것이다.
호남 혐오를 직접 피부로 느껴본 경험이 있는가?
눈 앞에서 전라도 혐오 발언을 들어본 경험이 있는가?
내가 특정 지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내 존재를 부정당하는 차별을 겪어본 적이 있는가?
어렸을 때, 아마 초등학생 시절이었을 것이다. 나는 교과서에서나 있는 줄 알았던 전라도 혐오가 현실에서 버젓이 살아숨쉬고 있음을 깨닫고 큰 충격에 빠졌다. 당시 전라도 혐오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네이버 카페가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페 회원들은 그곳에서 마음껏 전라도를 욕하고 호남인들이 얼마나 비난당해 마땅한 족속들인지 아냐며 무지성으로 게시글을 올리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그 카페를 직접 가입하고 한 회원과 소위 말해 키보드배틀을 떴다. 아무런 논리도, 정당성도 없이 내 말에 반박하던 인간은 결국 레파토리가 다 떨어졌는지 전라도의 재정자립도를 욕하며 사라졌다. 나는 지금 너희가 남발하는 비인간적이고 혐오적인 언행을 지적하고 있는데, 재정자립도를 들먹여서 뭐 어쩌라는 거야. 애초에 전라도가 왜 그렇게 낙후되어 가는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논리적인 생각을 해봤을까. 아마 아니겠지.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9년. 서울에서 모 학원을 다니고 있을 때였다. 점심시간이 되어 학원생들끼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원장 강사와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한 무리에게서 믿을 수 없는 말이 들려왔다. "우리 엄마가 전라도 사람들이랑은 놀지 말라고 했어." 정말 믿기진 않았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은 나와 동갑인 2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평소에도 혈액형별 성격을 진심으로 신뢰하며 내 혈액형이 무엇인지 질문했던 기묘한 인물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차별적 발언을 할 사람으론 생각되지 않았다. 방금 전까진 말이다. 하지만 내게 더 우울감을 가져다주었던 건 그 자리에 있는 여러 명의 학원생과 원장 모두 그녀의 발언에 그 어떠한 반박도 하지 않고 가벼운 분위기로 대화를 이어갔단 사실이었다. 에이, 요즘 세상에 그런 게 어디있어. 이런 사소한 부정의 말조차 없었다.
아마 그들 중엔 호남 출신이 없었겠지. 그리고 대화를 우연찮게 들은 내가 호남 출신이라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겠지. 너와 평소에 웃으며 인사하고,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던 내가, 네가 그런 가벼운 언어로 모욕하는 지역에서 나고 자랐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겠지. 난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학원을 그만두었다. 건강상의 사유도 있었지만, 나와 내 가족을 송두리째 모욕하는 인간들의 곁에 조금도 머물고 싶지 않았다. 왜 갑자기 그만두냐고 묻는 부모님께도 그 일화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평생을 전라도에서 살아오신 부모님이 그 일을 듣고 괜히 더 속상해할까 봐. 이런 경험들 때문에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내가 호남 출신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껄끄러웠다. 나와 장래 희망이 비슷하고, 같은 나이와 성별을 지닌 사람마저 그런 혐오적인 사상을 갖고있다는 걸 직접 겪었으니까. 누가 내 출신을 어떤 방식으로 혐오할지 모르니까.
왜 그들은 광주를, 호남을 멸시하는 걸까? 왜 마지막까지 군부독재에 저항한 도시를 북한과 엮으며 무의미한 음모론을 들이미나. 지금까지도 유튜브, 뉴스의 댓글을 보면 전라도를 논리 없이 비난하고 5.18이 폭동이라며 주장하는 세력들이 즐비하다. 이 혐오의 고리는 대체 언제쯤 끊어지는 걸까.
이런 고통 속에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내게 큰 의미를 가져다주었다. 광주의 아픔을 세상이 알아주고 있는 것만 같아서.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죽은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한강 작가의 연설 문구를 인용한 박찬대 의원의 2차 탄핵안 제안 설명이 흘러나오던 그 순간. 1980년 5월의 광주가 2024년 12월의 대한민국을 구했다는 말에 환호한 광주 시민들의 반응은 어지간한 일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 나조차도 왈칵 울고 싶게 했다. 그들의 목소리가 외치고 있기에. 부끄러워해야 하는 건 광주가 아니라, 광주 시민들의 저항 의지를 날조하고 모독하는 이들이라고. 그 많은 차별과 모욕을 견뎌내고, 우리가 지금 여기 있다고.
지금은 탄핵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내려온다 한들 세상의 많은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많은 시간이 걸릴 테다. 하지만 난 이번 사태를 통해, 그리고 「소년이 온다」를 통해 한 가지 다짐을 새로 했다. 가만히 있지 말자. 내가 1980년 광주에 있었다면, 그리고 2024년 12월 3일 국회로 달려갈 수 있는 위치에 살았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지고 싶다. 이 나라를 망치는 자들을 결코 지켜 보기만 하진 않을 것이다. 국회로 와 달라는 말 한마디에 모든 걸 뒤로하고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달려간 많은 이들처럼,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지키고자 움직이길 희망한다.
이하는 인상깊은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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