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소설
닐 셔스터먼 「수확자」 후기
2024. 7. 31. 23:41
친구가 재미있게 읽길래 관심을 가졌던 책... 수확자이다.
죽음도 질병도 사라진 세상 속에서 인류의 숫자를 인공적으로 조절하기 위해 사람을 '수확'이란 이름으로 살해하는 세계관이란 점이 내 눈길을 끌었지만, 이 소설 속에서 사랑이란 소재가 재미있게 쓰였단 말을 듣고 더 관심이 갔다. 사실 난 소설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그걸 기대하고 본 작품이 아닌데 갑자기 등장인물들이 사랑에 죽고 못살고 있으면 마음이 차게 식는 경향이 있지만(이를테면... 키르케... 물론 내가 키르케의 일생을 모르고 본 거지만.....) 그 후기 덕에 이번엔 나름대로 조금 마음의 준비이자 기대를 하고 보게 됐다.
또, 내가 마스터링을 준비중인 크툴루의 부름 캠페인 시나리오의 제목도 「수확의 시간」이라서 이 수확자에 더 관심이 갔던 것 같다. 아무래도 크툴루 신화적인 관점에서의 수확은 인간에게 부정적인 느낌을 줄 수밖에 없는데, 이 소설에선 이 수확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쓰였을지 더 궁금했고.
이야기는 시트라의 삶 속에 수확자가 어떻게 침투하였는지부터 시작했다. 첫 문단부터 인상깊었다. 이 새롭고도 훨씬 치명적인 변수는 그렇게 그녀의 인생 방정식으로 들어왔다. 번역이 매끄럽게 잘 된듯한 느낌이 들어서 더 마음에 들었고, 앞으로 이 평범해 보이는 학생의 인생이 어떤 방식으로 난리가 나게 될지 느껴진다고 할까. 그런데 생각보다 의외였던 점은 수확자들의 수확 방식 그 자체였다. 갑자기 내 인생에 나타나 당신은 이제 죽은 목숨입니다. 하고 죽는다니... 사실 사망시대-내가 사는 시대-의 죽음이란 그렇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작스럽게 나타나기도 하니, 사망시대의 죽음을 모방한다면 이게 맞긴 하겠지. 하지만 아무리 크게 다쳐도 불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만 아니면 재생 센터에서 몸이 완벽복구되는 세상에서 이런 방식이라니... 정말로 이 죽음은 개개인에겐 너무나 허무하지 않나.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오늘 밤에는 그들의 삶이 어머니의 미심쩍은 요리 실력에 달려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살펴보면 정말로 허무한 것은 이 세계 자체였던 것 같다. 문명의 성장이 완료되어서 아무것도 배울 게 없고, 발전될 만한 여지가 없는 세상.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더 중요하지 않은 세상에서 시간은 넘쳐나고, 할 거라곤 죽지못해 살아가는 삶을 영위하는 것뿐. 이러니 로언의 친구 타이거처럼 자살-철퍽-이 취미가 되거나 수없이 많은 회춘을 거쳐 새 연애를 하고 또 애를 낳고... 불멸의 시대에서 사람들에게 도파민을 채워줄 수 있는 건 사랑과 죽음 뿐이겠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건 그 둘 뿐일테니까. 이런 세계가 되어도 사람들이 계속 남과 사랑에 빠져 애를 낳고 또 낳는다니 참 징그럽기도 하고.. 지금도 거의 인류가 80억에 달했는데 안 죽는다면 지구가 터져나가다 못해 골병을 앓을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수확자의 존재가 조금 더 설득력이 생겼다...
「너에게 새 이모가 생길 거다, 로언. 멋지지 않니?」
뭐가멋져요대체
「우린 섬유질이야.」 타이거가 말했다.
「장 트러블이라도 없으면 아무도 우리가 있는 줄 모른다고.」
아마 메인 러브라인으로 추정되는, '로언'과 '시트라'라는 이 두 청소년들은 패러데이의 수확자 수습생이 된다. 그런데 사실 처음엔 놀랍도록 이 러브라인에 심장이 반응하지 않았는데... 이때의 로언은 말 그대로 햄버거속의 양상추나 다름없는 남자였기 때문일까? 어쨌거나 상황과 사건은 흥미로웠지만 이 둘이 왜 이렇게까지 서로에게 끌리게 되는 건지, 단지 누군가 수확자가 되면 상대를 죽여야 하기 때문에 생긴 연민과 애정인건지... 로언이 왜 이렇게까지 죽음을 택하며 시트라를 살리려고 하는지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 마음이 생긴 상대를 제 손으로 수확하게 되면 더는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할 거란 예감이 들어서일까?
하지만 뭐 내가 납득을 못한다고 해서 어쩌겠는가? 로언과 시트라는 이미 어쩌면 스스로도 납득 못할 사랑에 빠져있는 걸. 그래서 흠.. 내가 이 둘의 사랑에 흥미가 생길 수 있을까.. 싶었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생겼다. 어디냐면, 로언이 온갖 살인 기술을 다 익히고 고기같은 인간이 된 후... 콘클라베에서 시트라의 척추를 꺾어 죽게 만들었을 때.... 남주가 여주를 죽이는 과정에서(안죽지만) 이 둘의 사랑을 응원하게 되다니 내 취향도 참 어디 안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틀리고 불완전하고 공정하지 못한 상황 속에서 피어나는 파괴적인 사랑이 좋아.
「나는 너희의 구원이다! 내가 이승 너머의 수수께끼로 향하는 문이다!」
「그 저주받을 할당량이 우리 모두를 방해하고 있어!
할당량만 아니었다면 매일이 오늘 같을 수 있는데 말이야.」
그리고 작가가 의도한 부분이긴 하겠지만, 지금 세계가 돌아가는 꼴만 봐도 인간은 아무리 많이 배우고 돈이 많고 어쩌고 해봤자 절대 이성적인 존재가 될 수 없는데 여기서 더 문명이 발전한다 해서 얼마나 완전한 존재가 되겠는가? 누군가의 삶을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중요한 일을 '거의 완벽한' 선더헤드에게 맡기는 게 아니라 나와 똑같은 인간에게 맡긴다니. 사망시대에도 법과 경찰 등이 존재하기에 범죄자의 삶과 목숨을 빼앗을 권리가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범죄를 저지른 대상에 한하여, 인간들이 수많은 시간을 보내며 합의한 체계 아래에서 이뤄지는 거잖아? 근데 이 세계관 속에선 내 옆집 아저씨만도 못한 인간이 갑자기 나타나서 오늘밤 당신을 수확하겟습니다 찡긋 하고 날 찌른다. 이건 좀 아니지 않니? 심지어 고더드같은 수확자는 그 권력을 이용해서 온갖 '살인' 행각을 벌이고 다니는데 이걸 제대로 단도리할 수 있는 체계가 없다니. 말이되냐 이게? 애초에 태어난 사람들 죽일 게 아니라 출산을 막든가... 그래.. 이게 더 어렵겠지..
인간은 모여있으면 뭐든 부패하기 마련인데 이런 부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수확령을 만들고 유지한 것 같았다. 사이코패스가 수확자가 되면 인류멸망에 한걸음 더 가까워질텐데. 물론, 이 수확자라는 임무를 계속 수행하다 보면 사이코패스가 되거나 스스로를 수확하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거란 사실도 명백하다. 싸패에게 맡기면 안 되는 일인데 싸패만큼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사람도 없다니. 역시 수확령은 좀 잘못됐어.
누가 수확자가 되든간에 서로를 수확할 일은 없을 것 같긴 했지만, 수확자의 결말은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아나스타샤가 된 시트라와 루시퍼가 되어 부패한 이들을 단죄하고 다니는 로언이라니. 수확자 자체도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는데 선더헤드도 어떨지 궁금해졌다. 곧 읽어야지...
수확자 시리즈 영화화도 되고 있다고 하던데 잘 만들어지기를,,,,
「그럴 순 없어!」 수확자가 외쳤다.
그러나 몇 분 후, 그는 승무원이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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