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소설
한강 「채식주의자」 후기
2024. 11. 14. 00:50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무려 8년 전에 구입해놓고 단 한 페이지도 펼치지 않은 소설이었다...
그 당시 알던 지인이 한강 작가를 좋아한다길래 나도 사볼까? 하고 별 생각 없이 몇 권 따라 샀던 건데,
이렇게 2024년의 나에게 노벨문학상 작가의 원서가 되어 돌아오다…?
8년 전에도 무려 34쇄였던 맨부커 수상작인데 이젠 노벨상까지 수상했다니. 노벨상 소식이 들려올 때 해외에 여행을 나가있던 상황이었는데 정말 놀라웠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느낌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읽어나가며 8년 전의 어린 내가 읽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야 내가 보는 작품에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는 능력이 높아졌지만,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내던 2016년 무렵에 영혜의 이야기를 접했다면 이 이야기가 지닌 고통에 너무 심하게 공명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영혜의 남편은 하루아침에 모든 고기를 버리고 채식주의자가 되어버린 자기 아내를 조금도 이해할 생각 없이 비난한다. 그것도 모자라 온가족에게 일러 바치기에 이른다. 아진짜 유치해 죽겠네 ㅅㅂ
아무리 사랑 없이 한 결혼이라도 몇 년이나 같이 살았던 제 삶의 동반자가 갑자기 이상행동을 보인다면 왜 그런 건지, 아픈 건 아닌지, 치료가 필요한 건 아닌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들어볼 수 있을 텐데.
남편의 행동은 거의… 고장난 가전제품 A/S 때문에 성질부리며 제조사에 따지는 진상 고객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꿈 이야기는 허무맹랑한 헛소리로 치부하고, 그냥 가정부 취급을 하며 살아갈까 생각까지 하는 답도 없는 놈일 뿐. 실제로도 아내를 가전 정도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세상 현실의 수많은 남편들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들이라면 전부 공감할 터였다. 영혜의 남편이 보여주는 치졸하고 비겁한 행태에 대한 분노를 말이다.
물론 몇 년간 같이 살던 동거인이 갑작스럽게 모든 고기를 버리고 영원히 채식을 하겠다고 선언하면 나조차도 당황하긴 하겠지. 하지만 왜 그렇게 식생활을 바꾸게 되었는지 정도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채식만 할 생각이 없으니 앞으로 식사는 어떻게 해결할 건지 둘이서 차근차근 논의해볼 수도 있을 거고.
하지만 남편은 그 아주 작은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아내란 자신에게 무조건 아침마다 밥을 차려주고 빨래며 청소며 다 해줘야 하는 편리한 가전제품 그 자체니까. 가전제품이 자기한테 반항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
그리고, 더더욱 열 받는 것은 영혜 가족들의 반응이었다. 남도 아니고 자기 딸이 정상적이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데 진심으로 걱정하고 해결법을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딸 남편한테만 진심으로 면목이 없다고 사과하고.. 진짜 지랄났다. 정말로 제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영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겠지. 문제가 있는 것 같았으면 병원에라도 데려갔겠지. 그런데도 영혜의 아빠가 선택한 건 강제로 고기를 입에 물게 하는 최악의 수법이었다. 말을 안 듣는 딸의 뺨을 내리치고, 팔을 붙잡아 입에 고기를 밀어넣는다니. 그런 와중에도 부정이니 뭐니 뭉클하고 있는 남편의 꼬라지에 환멸만 났다.
딸은 고기를 안 먹는단 이유만으로 막 패도 되는 존재고, 사과는 사위에게만 하고?
이런 꼴이 집안에서 펼쳐지는데 부성애고 모성애고는 왜 찾는 거냐?
어쩌면 나도 가족간에 비슷한 일을 겪어본 적이 있어서 더더욱 답답했던 것 같다. 내가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일 때 나를 진정 걱정해주는 가족이라면 내게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과 함께 자세한 이유를 물어봐주길 바랐던 과거를 떠올렸다. 하지만 내 행동을 잠시나마 이해해 볼 생각조차 없이 대체 무슨 짓이냐며 화부터 내고 마는 가족의 반응에 그럼 그렇지, 실망하고 말았던 경험들. 세상에 작은 마음 하나 기댈 곳 없다는 걸 깨달아가는 과정. 그런 좌절이 차곡차곡 쌓여 영혜는 병들어갔을 테다. 내가 느꼈던 실망감과도 비슷하게.
결국 정신적으로 한계에 달한 영혜는 스스로 손목을 칼로 그어 병원에 입원한다. 그곳에서 새를 이로 물어뜯는, 완전히 '망가진 듯한' 영혜의 모습을 보여주며 1부는 마무리된다. 예상 외로, 이 연작 소설 3부의 주인공은 각각 영혜의 주변인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문제의 2부의 제목이.......... 몽고반점이었다는 것.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이 확정되고 난 다음, 한바탕 한강 작품 독서 열풍이 불어 그가 쓴 소설에 대한 여러 의견들이 트위터 타임라인에 들어오곤 했다. 그런데 그중 가끔 보이는 게 이상문학상을 받은 '몽고반점'이라는 소설에 들어간 처제와의 성관계 소재가 너무 문란하네, 야설이나 다름없네 하는.. 다소 의문이 드는 스포일러성 문장이었다. 그래서 몽고반점이란 소설에선 그런 소재가 쓰였구나.. 별로 읽고 싶지는 않군. 하고 대충 넘겼는데(와 진짜 이새키 채식주의자에 대해 아는게 1도 없었네)
갑작스레 내게 찾아온 몽고반점..
머뭇..
하지만 이쯤 되니 남편과의 관계는 거부하던 영혜가 어떤 과정을 통해 그런 행위를 하게 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솟아 2부를 읽었다. 그리고 결과는 역시나! 형부가 예술이라는 이름 하에 영혜를 한낱 더러운 성욕 분출에 이용해먹고 제 가정까지 파탄내는 이야기를 담고있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었기에 크나큰 충격까지는 없었지만, 영혜의 비정상적인 상태를 이용해먹을 생각만 하는 형부의 욕망은 씁쓸함만을 안겨주었다. 해설에는 그것이 영혜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났다고 쓰여 있던데, 이게 과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게 맞을지는 상당한 반발심이 들었다.. (그리고 번외로 해설 너무 읽기 힘들다. 작품 설명을 할 거면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해줬으면 좋겠다.)
작가님의 필력이 워낙 좋아서 생각보다 더 술술 읽을 수 있었는데, 어쩜 불륜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이 똑같을까 싶을 만큼 이 불륜남의 최후도 완전히 정석으로 그려낸 듯했다. 아니 이렇게 아내한테 들켰다고 베란다 밖으로 몸을 내던지고 싶을 만큼 괴로워할 거면 불륜은 왜 한 거야? 고작해야 그 정도의 각오도 없이 가정파탄으로 가는 급행열차에 인생을 맡기다니.. 정말 이해할 수가 없는 족속들이다.
그리고 3부.
이야기가 도대체 어디까지 흘러갈지 감이 잡히지 않았는데, 이 이야기는 가정이 파탄난 채.. 정신이 망가진 영혜를 돌보고 있는 인혜의 입장에서 시작되었다. 자신을 배신한 남편과 제정신이 아닌 여동생을 마주한 인혜가 과연 어떻게 될지도 상당히 궁금했는데, 3부에서 바로 그 이야기를 풀어주니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초반은 말이다. 3부의 내용은 앞선 내용보다 더더욱 고통스러운 감정이 가득하여 점점 읽는 속도가 느려졌고...
평범한 사람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흘리며 식물이 되고자 하는 영혜와 그녀를 홀로 내버려둘 수 없는 인혜 두 사람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 이게 갈등이 맞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갈등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서서히 침몰해가는 기분이 들었다. 따옴표 하나 없이 잔잔하게 이어지는 인물간의 대화는 마치 2부에서 언급되었던 추체험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내가 인혜의 고통속으로 온전히 들어간 듯한 느낌이었기에.
인혜는 동생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결국 영혜가 소멸하는 길을 택했을 거라 예상된다. 영혜는 삶의 고통 속에서 인간이기를 거부했다. 나무가 되고자 했다. 그 깊은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시기는 가족들이 억지로 고기를 먹이는 최악의 수를 택했을 때 이미 끝나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인혜가 동생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배려는 나무로서 삶을 종결지을 수 있도록 돕는 게 아니었을까...
살아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존재한다. 살아있다면 언젠가 기회가 온다. 죽어서는 불가능한 기회가.
하지만 때론 살아 숨쉬는 게 아닌 견디고 있을 뿐인 삶을 살아내도록 강요하는 것도 폭력이라 느껴질 따름이다.
요즘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여성 낙태권에 대한 조롱 목적을 지닌 'Your Body, My Choice' 라는 별 개같은 문구가 등장했던데. 그런 상황 속에서 내 몸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인해 벌어지는 비극을 보고 있자니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영혜가 채식을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다른 이들에게 육식을 강요당하는 게 아니라 충분한 공감과 이해를 받을 수 있었다면 이렇게 극으로 치닫지는 않았을지도 모르지. 남편이 부부간 성폭력 따위를 하는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영혜의 상태를 알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영혜의 부모가 강압적인 언행을 통한 학대 대신 영혜를 더 깊은 사랑으로 키웠다면.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에선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라는 걸 아니까 더 마음이 좋지 않았다. 화장과 옷차림, 심지어는 자신의 몸 그 자체조차 자신의 의지대로 다루지 못하는 수많은 영혜들이 있다는 걸 알기에.
TMI 1. 채식주의자를 읽으려고 버스에 탔는데,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이라 일단 폰으로 트위터나 좀 둘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타임라인에 충격적이기 그지없는 광고가 떴다. 죽은 채 진공포장된 듯한 새끼 돼지의 사진을 내걸고 고기를 파는 알리익스프레스의 프로모션이었나(공식 광고는 아니라고 했던 것 같다). 한순간에 혐오감이 차올라서 이 광고를 보지 않겠다는 버튼을 눌렀음에도 누굴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그 광고가 떴다. 그러다 못해 일론 머스크를 욕하며 폰을 끄고 책을 펼쳤는데, 하필이면 채식주의자의 초반부에 '육식'에 대한 끔찍한 묘사들이 낱낱이 나열되어 있었다. 끔찍한 광고에 고통받다가 이 책을 읽게 되니 더 형용할 수 없는 역겨움이 차올라 속이 안 좋아질 지경이었다. 그러면서도 강제로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만약 내가 본 게 새끼돼지가 통으로 죽어있는 모습이 아니라 평소 흔히 보는 조각난 삼겹살 패키지 광고였다면 딱히 그 정도로 혐오스러워하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사실상 삼겹살과 죽은 새끼 돼지 사이에 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가.. 육식이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혐오하는가...
TMI 2. 예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동인계에선 어떠한 콘텐츠를 공개할 때 원작자가 그것에 들어간 주의 요소(트리거 워닝 등)를 써두지 않으면 고지 없이 사람을 트라우마에 밀어넣는 완전히 나쁜 인간 취급을 받기 일쑤인데.. 대중적인 영화와 책에서는 전혀 상황이 다르다. 아무것도 모르고 보기 시작한 영화에선 사람의 속을 뒤집어 놓을 만한 끔찍한 영상이 펼쳐지는가 하면 수많은 책, 심지어 고전 문학에서까지 온갖 충격적인 소재들이 큰 제약 없이 쓰여있는 걸 목도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소설책에 이 이상의 검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냥 내가 접하는 컨텐츠들에서 이렇게나 향유자들의 기준이 다르다는 게 신기해서 적어봤다. 채식주의자만 해도 성폭력, 자살, 자해 같은 예민한 소재들이 마음껏 나오니까. 예전에 나름대로 대중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로맨스판타지 소설을 하나 읽었다가 내용의 미친듯한 피폐함에 기겁하며 하차했던 기억도 떠올리며...
TMI 3. 책을 대중교통에 가지고 다니며 읽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목 아프다. 이북리더기는 정말 짱이다. 그리고 새로 장만한 북커버를 끼워서 독서하고 있으니 확실히 내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남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시선에서 더 자유로워진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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