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소설
구병모 「파과」 후기
2025. 4. 18. 21:51
파과에 대해 아는 거라곤 나이 든 노년 여성 킬러가 나온다는 것뿐.
그리고 영화 포스터에 적혀있던 "죽여도 되니?"라는 대사 정도.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클라이맥스의 대사 그 자체였구나.
세 명이서 새롭게 시작한 독서모임의 첫 독후감 도서는 3월의 1984였건만...
3월에 너무 심적으로 바빠 책을 많이 못 읽었다.
그리하여 도서관 상호대차를 통해 빌린 4월의 책 파과부터 읽게 되었다. #반성합니다
사실 작가 이름만 들어봤지, 구병모 작가의 책을 직접 읽은 건 처음이라 과연 어떤 문체를 가졌을지 상당히 궁금했다. 이번에 알아보면서 그 유명한 '위저드 베이커리'가 이 작가의 책이란 것도 처음 알았다.
요즘은 그나마 한강 작가나 양귀자 작가의 책을 통해 한국문학을 몇 권 읽긴 했으나 본래 번역된 외국 서적을 많이 접한 편이다 보니 한국 작가가 말아주는 한국 배경의 문학을 더 읽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번역가 분들이 정성스럽게 우리말로 바꾸어 써준 책도 좋지만(당연히 난 번역가분들을 사랑한다) 작가 본연의 문장을 읽는 건 아니니까. 그에 따른 아쉬움이 있기도 했다.
때로는 영화 자막을 보는 게 아니라 그냥 원어 그대로의 맛을 느껴보고 싶기도 한 것처럼...
이게 다 영어가 제1언어가 아니라는 것에서 오는 모국어통인듯
그렇게 펼쳐본 파과. 도입부터 아주 지독하게 짜증나는 남성 엑스트라가 등장한다.
이거 뭐 당장 폭행죄로 경찰서에 넘겨도 손색없을 만큼 대담한 중년 남성의 언행에 역겨움을 느끼고 있자면...

조각에 의해 남성은 기다렸다는 듯이 사망한다. 그런데 그건 그렇다 치고...
전체적으로 느낀 점: 와... 왜 이렇게 문장 읽기가 어렵지? 군데군데 나오는 낯선 단어들이 조금 문제였다. 햇귀, 시뜻하다, 쑥대강이, 구들더께, 시러베장단 등등.. 평소 한번도 접하지 못해본 단어가 많아 읽다 말고 자꾸만 네이버 사전 단어검색을 하게 된다. 틈날 때마다 국어사전타임을 갖고 있으니 진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렇잖아도 핸드폰만 열면 집중력이 수직하락하는 인간이라 최대한 전자기기를 쓰지 않기 위해 실시간 독서 기록도 수기로 하는 마당에 🫠
이런 단어.. 현실에서 일반적인 대화할 때 쓰면 아무도 못 알아듣지 않을까? 하지만 평소에 잘 안 쓰는 어려운 단어라고 문학에서조차 쓰지 않으면 그만큼 온세상 사람들의 어휘력이 더 낮아지는 거겠지.. 나의 무지함의 문제인가? 이런 복잡한 고민을 하며 읽게되는 것이다..
만연체는... 나는 보통 TRPG를 하다 보니 영어 시나리오를 한국어로 번역하며 1차 정리하고, 그걸 세션 스크립트로 출력하는 과정에서 "플레이어가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는 강박에 따라 2차 정리한다. 그렇게 글을 최대한 간결하게 끊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짧은 문장에 익숙해져있는 상태이긴 하다. 누군가와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글을 쓰다 보면 문장 너무 길어지는거 경계해야 하걸랑. 그래서 쉽진 않았지만 읽을만한 정도였던 듯...(Maybe)
독서 끝나고 구병모 작가 인터뷰를 찾아보니 자신만의 스타일 찾기와 더불어 '가독성이 좋고 쉬운 소통을 옳다고 여기는 경향'에 반기를 들고 싶었다고도 말씀하시던데, 뜻은 이해하지만 그냥 내가 모자랐다는 점. 그리고 또 후반부로 가면 그렇게 어려운 단어도 잘 안 나온다.
여튼.
파과를 읽기 전 친구들과 이야기한 바로는 파과 뮤지컬에 신성록씨가 나왔다던데. 비싼 몸값의 신성록 씨가 맡을 만큼 비중있는 남성 캐릭터가 과연 누구인가? 궁금하긴 했지만 독서를 시작했을 무렵엔 까맣게 잊은 채였다. 처음에 투우는 그냥 뭔 시정잡배같은 성가신 남자아이 롤인가 싶었지(맞긴 함). 그러던 중 강 박사가 나오고 나서야 신성록이 대체 누군지 궁금해졌다. 강 박사가 뭔가 그 정도까지 비중이 큰 주연같지는 않은데. 누구지? P님 이 성록유니버스 어떻게 책임지실 겁니까?
성가신 남자아이 Role의 투우는 알고보니 조각이 남기고 간 실패한 완전범죄의 유산이었다. 부유한 집안에 살던 남자아이가 어쩌다가 그런 방역업에 종사하게 되었는가. 제 아버지의 피 흐르는 머리통을 발 위에 얹은 때부터, 그리고 창 밖으로 사라져가던 진주색 등을 목격한 최초의 순간부터. 말 그대로 '나를 죽이지 못한 트라우마는 페티시가 된다'는 문장 그 자체였던 것 같다. 가족의 죽음에 대한 충격을 뛰어넘는 조각의 차가운 아름다움에 매료된 나머지 20년이 훌쩍 지난 현재까지 조각에게 지독한 집착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각은 왜 어린 투우를 살려준 걸까? 자신의 정체가 발각될 가능성을 남겨두고서도. 특히 전성기의 조각이라면 그런 어린아이쯤이야 단숨에 없앨 수 있었을텐데. 어차피 사건에 있어 충격받은 어린아이의 진술은 그다지 신빙성있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인 건지.
"잊어버려." 라고 경고한 남자아이는 잊기는커녕 65세의 조각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기까지 한다. 과거라는 올가미로 조각의 발목을 낚아채려 시도한다. 투우가 아니라 카우보이같다🐂 🐂 🐂
아무리 봐도 이거 제 생의 등대나 다름없는 조각이 낡아가는 유물이 된 상실감과 더불어 자기가 아닌(ㅋ) 강박사에게 이끌리는 데에서 비롯된 『질투심』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네, 납작한 캐해석입니다. 30대 남성 둘과 60대 여성 하나. 저를 구해준 강박사에게서 잊지 못한, 영원히 그 나이에 머무르고 있을 류를 떠올리게 된 조각. 그리고 아버지가 죽던 그 날의 트라우마에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투우. 아이가 있는 사별남...강박사(납작2). 이 관계성이 참 흥미로운 설정으로 느껴지기는 했으나 투우의 행동이 가면 갈수록 짜증났다. 아오 성가셔.

클라이맥스에선 둘의 숨막히는 결투라도 바로 벌어지나 했더니. 조각을 위협하며 가지고 놀기 위해 업자 몇을 차례로 대기시켜놓기까지 하는 투우의 행동에 질려서 제발 조각이 이놈을 빨리 때려잡아주기를 기도했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비틀려버린 인간의 최후란 정말이지 추악하지만 맛있구나. 그 순간 진심으로 투우를 좀 때려주고 싶었지만 결국 둘의 마지막 모습은 아름다웠으니 그걸로 된 것 같다. 한 손을 잃어버린 조각이 네일아트를 받고 평생 접하지 못한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도 나름대로 괜찮은 결말이었던 것 같다. 내용이 그렇게 어렵지 않아서 초반부 빼고는 쉬지 않고 읽을 수 있었던듯.
외전격인 파쇄에선 젊은 조각의 이야기가 나온다던데. 어쩌다 조각이 내연남의 아이까지 가지게 되는지, 초보 시절의 방역은 어땠는지 같은 기타등등 스토리는 좀 궁금하긴 하지만 아직은 파과로 만족이 되어서 파쇄까진 읽지 않을 것 같다.
TMI. 만화 사카모토데이즈도 '살연'이라는 청부업 전문 조직까지 있는 직업 킬러 이야기라서 참 좋아하는데. 여기에서도 살인청부업 회사가 등장해서 재미있었다. 물론 이런 건 2D에서 존재할 때 가장 아름답다. 참 어쩔 도리 없이... 읽는 내내 범죄심리학자 박지선 교수님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범죄를 저지르면 곧 잡힌다
모두 너보다 똑똑하다.
추신. 도서관 책에 낙서하지 마라. 밑줄 긋지 마라. 쫌.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상처가…… 벌어집니다."
84p. 강박사님 맛있네요.
이제 내가 당신을 어떻게 해야 할까.
127p. 이자식 진짜 모르겠어서 나한테 물어보는거같음 뭘 해 하기는
무언가를 하기로 생각하고 있다면, 설령 그것이 가벼운 인사일지라도, 언제나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요즘 같아서는 더욱 그렇다. 돌아서면 곧바로 자기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 잊고 마는 일상이니까.
168p. 하자...
서로가 소멸의 한 지점을 향해 부지런히 허물어지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되는 서글픔을 포함하고 있었다.
204p.
"사람들은 자기가 가는 곳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꼭 남더러 갈 곳을 끈질기게 묻더라. 당신 지금 자기가 뭐 하고 있는지 정말 알기나 해? 아는 건 단 하나, 목적지는 몰라도 하여튼 가고 있다는 사실뿐이지."
221p.
그녀는 강 씨에게 고통을 덜 주고 싶은 자신의 마음도 지키고 싶은 마음의 일종에 해당하는지를 헤아려보며 전철역으로 향한다.
254p. 하... 조각의 고뇌가 좋다.
사라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그래서 아직은 류, 당신에게 갈 시간이 오지 않은 모양이야.
3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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