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카메라
후지필름 X-T5 & 시그마 1850 구입 후기
2023. 8. 12. 22:38
특: 일기라서 주저리 많음
카메라를 샀다. 이유는 터무니없다. 갖고 싶어서다.
사실 요즘처럼 핸드폰 카메라가 발달한 시대에 굳이 무겁고 크고 비싼 미러리스 카메라를 사는 게 과연 좋은 선택인가? 싶은 생각도 들기야 했지만... 나는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교 입학선물로 DSLR 카메라를 원했을 만큼 사진을 좋아했다. 카메라도 좋아하고. 겨울방학에 기숙학원에서 한달동안 공부하고 오면 카메라를 사 주겠다는 부모님의 제안을 냉큼 받아들이고 당시 백만원 가량 하던 펜탁스 K-r 을 얻어냈다. 그렇기에.. 핸드폰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카메라만의 능력을 알기에 폰 카메라 성능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아이폰의 이 허접한 아웃포커싱 어떡할 거야.
또 요새 여기저기 놀러다니며 사진을 남기다 보니 기록하는 일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다.
친구들이 여행 브이로그를 만들어줬는데 생각보다 정말 너무x2 좋은 거다...
눈으로만 즐기는 여행? 물론 좋지만 그 순간뿐이다. 사람 뇌는 생각보다 망각이 쉽고 기억력이 무척이나 얄팍해서 모든 걸 생생하게 기억하기란 불가능하다. 마치 좋은 렌즈와 작은 내장 메모리만 달린 아날로그 카메라라고 할까. 매일매일 새로운 기억이 덧씌워지기에 예전의 기록은 자연스레 잊힐 수밖에 없다. 나만 해도 20대 초반에 간 유럽 여행들의 구체적인 기억이 사라져 가고 있기도 하고.
그래서 결론? 남는 건 사진 뿐이다. 영상이면 더 좋고.
지금도 나의 K-r 은 잘 작동하고, 사진도 문제 없이 찍히긴 한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보급기'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만큼 결과물은 현재 내가 쓰는 아이폰 12와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다. 화소 수도 1200만대로 비슷하고. 또, 쓰다보니 정품 배터리는 이미 생을 다 한지 오래에, 건전지로도 작동하긴 하나 새 건전지 4개를 넣어도 전원을 켜면 배터리가 많지 않다고 뜬다. 아마 액정을 켜는 것만으로도 배터리가 광탈될 만큼 바디가 낡은 모양이다…
아이폰보다 못하게 된 깨알아…….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불리던 별명)
그래도 꽤 좋은 카메라였다. 배터리 문제만 아니라면 지금도 나름 쓸만 했을 듯.
무엇보다 그 당시 흔하지 않은 흰색 DSLR 이라서 예뻤음 (구입했던 가장 큰 이유)
근데 아이폰 보정 기능 개좋은듯?
그렇게 점점 카메라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져가던 차…
아는 분께서 본인의 여행용 인스타그램을 보여주셨는데,
그분께서 찍은 사진이 너무! 예쁜데다 감성이 넘쳤다.
사용 기종은 후지필름 X-Pro2 였다.
후지필름?
카메라를 다시 사면 소니나 캐논 같은 유명 브랜드를 골라야 하나 싶었던 찰나에, 치유할 수 없는 마이너병에 걸린 내 눈에 딱 들어온 기종이었다. 살 거라고 생각해본적 없는 카메라 브랜드였지만.. 여기선 무슨 카메라를 파는지 둘러보려 홈페이지에 들어갔는데, 최신 기종이었던 X-T5 를 보는 순간 아.. 이거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이얼이 많은 클래식한 외형. 실버와 블랙의 아름다운 조합…….
나는 물건을 고를 때 고려할 점 1순위를 디자인으로 생각하는데, 왜냐면 요즘같은 기술 상향평준화 시대에 물건들의 성능은 거기서 거기고… 결국 보기 예쁜 게 쓸 때도 기분이 좋기 때문에. 나의 티스토리 공지에 올려둔 사용 장비들 또한 거의. 오로지. 디자인만 보고 고른 물건들이 대다수였다. 그래서 다른 브랜드에 비해 비싼 가격과 약간 불편할 수 있는 클래식함은 감내 가능한 정도였다. 내 기준에서 아름다운 건 그것만으로도 그 값을 한다고 생각하기에…….
감 / 성 / 충
무엇보다 후지필름 색감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후지필름은 필름을 오랫동안 만들어온 이름값답게 카메라 내에서 자체 필름 시뮬레이션을 여러가지 제공해서 보정이 필요 없을 만큼 훌륭한 결과물을 내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뭐 요즘처럼 폰이나 어플로 보정 잘되는 세상에서 이것도 쓸모없다면 쓸모없을 수 있지만 나는...
보정에.. 시간을 많이 쓰고 싶지 않아~~!!
내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하루 몇 시간씩 포토샵 앞에 앉아 색감이 괜찮은지 형태와 구도는 어떤지 고뇌하고 보정하느라 고통받다 보면 사진 정도는 그냥 보정 없이도 예쁘게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할까,, 물론 사진을 취미로 갖다 보면 보정은 필수로 하게 되겠지만 기본 결과물이 좋으면 보정에 손댈 필요도 없잖아.
또, 가격이 좀 나가긴 했지만 중고구매는 생각도 안 했다. 매물 괜찮은 가격에 나올 때까지 존버하기+물건 상태 확인하기+사기 아닐까 걱정하기+지방사람이라 서울직거래는 그냥 포기해야하는 수준 = 걍신품사께요. 게다가 중고로 얼마인지 좀 살펴보는데 이거 뭐 돈 조금만 더 주면 신품 살 수있는데 굳이 이걸 중고로 산다고? 싶을 만큼 중고 가격을 높게 책정한 경우도 꽤 많았다. 아니 뭐.. 굳이??
어쨌든 그래서 가성비는 뒤로 밀어두고 아름다운 X-T5의 외형에 홀려 홀라당 300에 가까운 돈을 태워버린 것이다...
사실 너무 급하지 않게 올해 말이나 살까 싶었지만... 나는 마치 해결하지 못한 숙제처럼 머리 한구석에 '카메라'가 남아있는 그런 느낌을 견디기 싫어하는 타입이라 서울에 들른 겸 디지탈 창신에서 구입하기로 했다. 카메라 같은 예민한 물건을 택배로 받는 것도 좀 꺼려졌고(다른 사람 후기 보니까 X-T5 의 자체 포장이 좀 불안해 보였음) 지방에 살다 보니 직접 보고 살 수 있는 기회가 많지도 않았다. 그래서 겸사겸사 매장 방문을 했다.
나는 실버 바디 + 시그마 1850을 원했는데 이 조합으로 살 수 있는 곳이 얼마 없기도 했다.
실버.. 인기 많던데? 죄다 품절이던데?
이곳 홈페이지에서 분명 실버 바디 번들 키트를 시그마 렌즈로 변경해서 팔고있다는 점을 확인 하고 간 거지만 사실 온라인에 올라와있다 하더라도 오프라인에서 못 사는 경우도 있기에... 구입 못 해도 일단 구경이라도 하자는 마음이었다.
아니다. 존나 사고 싶었던 거 같다.
간 김에 카메라랑 렌즈도 이거저거 보면서 여유롭게 얘기도 나누고 싶었지만 딱히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어찌되었건 직원에게 X - T5 실버를 달라고 하고, 제발 재고가 있기만을 바랐는데.. 다행스럽게도 있었다.
이 가게의 렌즈 교환 판매는 번들 키트에서 렌즈를 빼고 시그마 1850을 넣어주는 방식인데, 직원 한분이 사은품도 챙겨주시며 포장을 하고 있는 와중에 다른 직원분(아마 사장님?)은 그 모습을 보며 뭔가… 심각한(?) 표정이었다. 뭔가 판매에 문제가 있나 싶어서 걱정되었는데, 곧 그분이 나한테 조심스레 묻는 것이었다.
"꼭 바디를 실버 색상으로 사야 해요?"
"네… 저는 실버만 살건데……."
차분하게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하.. 이러지마세요 저 실버아니면 안살거예요 제발 나 이거 사려고 여기까지 왔다고요ㅠㅠ 생각하며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마 재고가 그거 말곤 없어서 그런 건지 뭔진 모르겠지만, 그분께선 고민하던 끝에 결국 판매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모른척 넥스트랩을 고르는 와중에 들려오는 목소리..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실버 키트 전부 품절시켜……."
음
아무튼 결과적으로 내가 이 가게의 실버 색상을 품절시키고 돌아온듯?
기쁘게 카메라를 사고 돌아와서 당장 뜯어보고 싶었지만 집 도착까지 대략 5시간 남은 상황...
터미널에서 수플레 팬케이크나 시켜놓고 잠깐 바디 구경을 했다.
너무.. 아름다워…….
집에 돌아와서 바로 카메라를 써 보며 온갖 걸 다 찍어대고 싶었지만,
외주가 너무 바빠 거의 3일단 모셔두기만 하다가..
겨우 마감을 끝내고 어제 오늘 조금씩 만져보며 사진을 찍었다. 그래서 느껴본점들.
1. 바디 및 악세사리
예쁘다. 아름답다. 전작보다 사이즈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줌렌즈를 체결한 상태로는 내 손에 조금.. 그렇게 가볍지는 않은? 듯? 사실 내 손목이 좀 많이 안 좋은 편이라서 오래 쥐고 있으면 좀 부담이 가는 느낌이 들었다. 목에 잘 걸어두고 손으로 들 땐 오른손으로 드는 버릇을 가져야겠다. 손이 작은 편에 가까워서 그립감은 무난하게 괜찮았다. 또, 이것저것 버튼이 엄청 많아서 기능 익히기를 좀 해야 할 거 같은데 아직 매뉴얼을 다 읽지는 않았다. 다이얼이 그래도 직관적인 편이라서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 듯하다.
셔터 소리는 꽤 정숙했는데 이 점은 내 취향은 아니었다. 또, 누군가 X-T5 의 반셔터 문제점에 대해 말한 걸 읽었는데 써 보니까 이해하겠더라. 반 셔터가.. 반이 아니라 한 80% 셔터 같은데? 초점 잡으려고 반셔터 누르다가 실수로 힘조절을 잘못해서 셔터를 눌러버리는 경우가 꽤 많았다. 이 조작감은 좀 애매하다. K-r 쓸 땐 셔터를 살짝 누르면 알아서 초점을 맞춰줬는데 X-T5 는 좀 더 셔터를 누를 듯 말듯 힘을 줘야 해서 적응이 안됐다.
그리고 후기를 찾아보니 실버 바디의 도장이 꽤 잘 벗겨지는 거 같아..(ㅠㅠ) 코엠스킨의 실버 색상 스킨을 붙여주었다. 붙이기 난이도는 중간정도. 감촉도 괜찮고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티도 안날 정도로 꽤 퀄리티가 괜찮다. 추천.
넥스트랩은 씨에스타의 가죽 스트랩으로 골라주었다. 흰 실로 박음질 된 어두운 가죽 감성의 스트랩이 갖고 싶었다. 나일론 줄은 나에겐 너무 길어서 남는 부분은 자른 다음 라이터로 끝을 좀 지져줬다. 마음에 든다.
2. 렌즈 리뷰와 고민
일단 시그마 18-50 mm 렌즈를 체결했는데, 2.8이라는 고정조리개와 가벼운 무게를 가진 좋은 렌즈라지만 사실 너무 길기도 하고 내 취향이랑은 좀 벗어나긴 했다. 한 반절 정도의 길이였으면 좋겠다. 내가 원하는 건 울트론 27 정도의 납작하고 아름다운 생김새지만.... 그래도 여행 다닐 때엔 줌이 꼭 필요한 경우도 있고, 번들렌즈와 비교하면 꽤나 좋은 스펙을 가졌다고 평이 자자해서 일단 하나 있으면 후회는 없겠다 싶었다.
장점: 전 구간 2.8의 고정 조리개와 다른 렌즈들과 비교했을 때 작고 가벼운 크기
단점: 그런데... 왜 줌링 돌리는 방식이 반대인거지? 완전 헷갈려서 자꾸 헛손질한다. 그리고 줌링이 초점링보다 멀어서 줌 하고 싶은데 자꾸 초점링을 돌리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카메라를 왜 사는가? 아웃포커싱 하려고요.
2.8로도 꽤 괜찮은 아웃포커싱을 할 수 있다.
그래도 조만간 조리개 1.2~1.4 급의 단렌즈를 하나 영입하고 싶긴 한데...
감성이냐 이성이냐의 문제에 직면한 거 같다.
이성: 후지논 XF33mmF1.4 R LM WR
감성: 보이그랜더 ULTRON 27mm F2 / NOKTON 35mm F1.2 / NOKTON Classic 35mm F1.4
클래식한 느낌이나 색감은 보정으로 얻을 수 있지만 강렬한 선예도는 보정으로도 얻을 수 없고.. 영상 찍을 것도 생각해 보았을 땐 신형 33.4가 맞는 선택인 거 같지만 일단 너무 크고 비싸고(이거 신품이 99만원 쯤 하던데 이 돈이면 소니 ZV - 1 M2 도 살 수 있다고….) 무게가 좀 나가는 편이라 아직은 좀 더 고민 중이긴 하다.
35.4는 AF 구동할 때의 소음이 생각보다 굉장히 거슬려서 고려대상에서 제외중이긴 한데... 어차피 수동렌즈도 고려하는 거면 영상 찍을 때만 MF로 두면 되는 거 아닌가? 급고민
보이그랜더 수동 렌즈들도 다들 한가격씩 해서 아주아주 고민이 되는 부분이다. 솔직히 울트론27은 한 40만원만 됐어도 그냥 사서 간지용으로 달고 다녔을 거 같은데, 신품 70만원…. 그에 비해 조리개 값이 약간 아쉽고 수동 렌즈라서 보류중. 그래도 보이그랜더 제품들은 예쁜건 진짜 무지하게 이쁘다.
....
갖고싶어
그래도 이왕 비싸고 좋은 바디 샀으니 비싸고 좋은 렌즈도 써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고 (도돌이표)
3. 색감
후지필름을 산 두 번째 이유. 색감. 보정 없이도 후지필름만의 GAMSUNG샷들을 잡아준다. 일단 우리집에서 놀고 있는 모델을 하나 데려와서 색감 테스트를 했다. 근데 초록색 이불 위에서 찍은 거라 좀 그림자가 초록빛이 많이 나는 건 감안 하고 봐야 한다. 또 모든 시뮬레이션을 다 쓴 건 아니다.
짠. 일일 모델.
이것이 X-T5의 기본 색감 Provia다. 음, 그다지 특별할 건 없다.
그 다음 벨비아. 채도를 강하게 살려준다. 생각 외로 강렬해서 마음에 들었다.
20세기 다큐멘터리 매거진과 유사하다는 클래식 크롬. 채도가 낮고 섀도우톤이 강하다.
가장 인기가 많은 듯한 클래식 네거티브.
아.. 이거 진짜 색감에서 느껴지는 깊이가 내 취향이다.
특히 곧 아래에서 예시로 보여줄 초록색 색감이 너무너무 맘에 든다.
영화 느낌을 준다는 이터나와 이터나 블리치 바이패스.
채도가 낮아서 꽤 취향이었다. 특히 이터나로 촬영한 영상은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음.
인물(?)을 봤으니 이제 풍경 차례.
프로비아(스탠다드)
벨비아. 확실히 강렬하다.
아스티아. 좀 부드러운 느낌이다.
클래식 크롬. 채도가 낮고 차분한 느낌.
클래식 네거티브는 필름 시뮬레이션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노스탤직 네거티브. 오래된 사진 앨범의 이미지를 재현한다고 한다. 서정적인 느낌.
이터나. 정말 영화같음.
호불호가 꽤 갈리겠지만 느낌 좋은 이터나 블리치 바이패스
이외에도 프로 네거티브 하이/스탠다드, 아크로스같은 시뮬도 있긴하지만 적당히 넘어가도록 한다.
결론... 진짜 너무너무 마음에 든다.
전부 보정 없이 클래식 네거티브로만 찍은 사진들이다.
아직 손에 쥔지 며칠 안 돼서 사용법도 다 못 익혔고 미숙해서 적당히 찍어봤다.
날도 더워서 밖에서 오래 못 찍겠더라.
하늘이 희게 날아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도 날이 흐려서 있는 그대로 찍힌 거임
자연을 좋아하다 보니 초록색이 예쁘게 나오는 색감을 상당히 좋아하는데, 클래식 네거티브는 그냥 내 취향 그대로의 색감을 구현해 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거야말로 막 찍어도 잘 나오는 시뮬레이션같다..
영상도 잠깐 찍어봤지만 엄청 마음에 들게 나옴.
휴
앞으로 더 사진 공부를 해서 이것저것 다양하게 찍어보고 싶다.
단렌즈도 좀 구비해보고..
올드렌즈도 써 보고 싶지만 아직은 좀 먼 일처럼 느껴진다.
그럼 오늘의 일기 끝~~~
↓네이버 블로그 ver.
https://blog.naver.com/cgblog/223182279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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